전의면의 유래
개인적으로 세종시 전의면의 유래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원래 전의면은 연기군에 속했으나 개편되면서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이 되었습니다.
이곳의 지명을 전의라 부르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 부터라고 합니다.
전의면의 유래는 백제시대때 이곳에서 ‘전씨(全氏)’가 많이 살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전의면 다방리 비암사에서 발견된 석불비상에 새겨진 ‘전씨’라는 명문과 이 일대의 지명이 전의·전동이라 한것이 이 사실을 입증해 준다고 합니다.
지금도 마을에 성이 전씨인 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을지 궁금하네요.
천년고찰 비암사
<비암사 극락보전 / 사진출처 : 문화재청>
전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비암사(碑岩寺)라는 사찰입니다.
비암이라고 하니 어르신들이 뱀보고 비암이라고 하시던게 생각이 났는데요 실제로 과거에 비암사를 뱀(뱜)절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뱀절이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조금은 슬픈 설화가 있는데요,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비암사는 옛날 뱀절이라고 불렀는데 여기에는 구렁이에 얽힌 전설이 있다.이곳에는 비구니들이 거처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해질 무렵 낯선 청년 한 명이 찾아와 밤새 탑돌이를 하다가는 돌아갔다. 일반적인 방문객은 낮에 찾아와서 밤이 되면 돌아가는데 데 이 청년은 반대로 행동해서 모두들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런 어느 날 청년은 탑돌이를 끝내고 비구니에게 물 한 잔을 청하였다. 비구니는 물 한 바가지를 권하여 궁금한 이유를 물어보았다. 청년은 사연이 있지만 말을 할 수 없다는 듯이 빙그레 웃고는 그냥 떠나갔다. 청년이 사는 곳이 궁금했던 비구니는 청년을 미행했다. 청년이 산 속의 커다란 바위에 뚫린 굴로 들어가자 비구니도 따라 들어갔다. 비구니는 깜짝 놀랐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가운데 커다란 구렁이가 한 마리 있었는데 눈물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놀라서 바라보는 비구니를 향해 구렁이는 말문을 열었다.
"나는 사람이 되는 깃이 소원인데, 100일 동안 탑돌이를 하면 사람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내 정체에 대해서는 누구에게 말하면 안되기에 지금까지 이를 숨겨 왔는데 이제 정체가 탄로 났으니 평생 구렁이로 살아가게 되었다."
비구니는 자신의 호기심으로 사람이 되지 못한 구렁이 곁에서 수발을 들며 일생을 보냈다고 한다.
<비암사 느티나무>
<비암사 삼층석탑 / 사진출처 : 문화재청>
<비암사 소조아미타불좌상>
비암사 오르는 길에 있는 수령 800년의 거대한 느티나무를 보면 천년고찰이라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이 느티나무는 보호수로서 흉년에는 잎이 밑에서부터 피어 위쪽으로 피어오르고 풍년에는 위에서 아래쪽으로 피어내린다고 전합니다.
비암사에 들어서면 삼층석탑과 그 뒤로 법당인 극락보전이 자리해 있습니다.
비암사 삼층석탑은 고려시대에 제작된것으로 추정되며, 탑 꼭대기에서는 국보 106호인 계유명전씨아미타불삼존석상과 보물 2점이 발견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삼층석탑 뒤에는 대웅전, 극락보전, 명부전등의 모습도 눈에 들어오는데요. 건물 안팎의 모습에서 우리 사찰의 운치와 멋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암사는 지명도가 높지는 않지만, 건축물의 아름다움, 사찰의 분위기 등은 어느 명찰에 뒤지지 않는 사찰입니다. 사찰을 둘러보다보니, 도시의 소음과 공해에서 벗어나 고요함과 정적인 분위기속에 마음이 정화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꼭 한번 방문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전의향교
<전의향교 / 사진출처 : 문화재청>
전의면 읍내리에는 전의향교가 있습니다.
연기향교와 함께 연기군에 위치한 두 개의 향교중 하나로, 전의향교는 언제 지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 태종때 세워졌다고 전해집니다.
교육공간인 명륜당이 앞쪽에 있고, 그 뒤의 내삼문을 지나면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위치하고 있는 전학후묘 형태로 건물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전의향교는 현재 충청남도지정기념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구름이 머무는 곳, 운주산과 운주산성
<운주산성 / 사진출처 : 문화재청>
전의에는 산마다 산성이 쌓여져 있습니다. 현재 운주산성이라 부르는 산성은 원래 이름이 고산산성이었다고 합니다. 옛 문헌에 전의의 형국이 솥모양으로 생기어, 증산·고산·운주산이 솥의 발처럼 전의를 받치고 있는 모습이라 했는데요. 이때의 고산이 지금의 운주산이라고 합니다.
운주산성은 운주산 정상을 기점으로 서남단 3개의 봉우리를 감싸고 있는 산성으로 길이 3098m의 외성과 543m의 내성으로 이루어진 대단히 큰 산성입니다.
운주산에는 등산로가 정비되어있으니 산행을 하기에도 좋으며, 입구에는 고산사라는 사찰이 있으니 둘러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왕의 물, 관정리 약수
전의에는 세종대왕의 눈병을 고친 왕의 물이 있습니다. 전의초수라 불리는 관정리 약수는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를 위해 많은 책을 읽다 눈병을 얻어 실명위기에까지 갔을 때, 이 물로 눈병을 깨끗이 치료했다고 하는 약수입니다. 이는 세종실록에 기록으로 전해져오며, 이러한 내용이 스토리텔링으로 만들어져 ‘왕의 물’이라는 연극 무대에까지 올랐다고 하네요. 그리고 매년 이곳에선 ‘왕의 물 축제’를 개최하고 있으니 톡쏘는 물맛 한 번 보러 가시는 것도 좋을것 같습니다.
전의 지역은 연기군에서 문화유적이 가장 많은 지역입니다. 소개해드린 문화재 외에도 대곡리 삼층석탑, 문목사, 경원사, 분청사기요지, 효자·충신·열녀들이 받은 정려 등이 남아있습니다.
도시개발과 더불어 이들 문화재를 잘 보존하여 세종시의 균형있는 성장에 좋은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